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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 관한법

핵에 대한 국제적 규제

핵확산과 국제적 규제

핵시대 초기에는 핵에 대한 국제법상 규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국제사회에는 전반적으로 핵에 대한 위험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핵국가들이 자유세계의 안보를 내세워 핵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핵활동과 핵시설에 대한 국제 규제를 수락하는 것은 이같은 활동에 대한 자유의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곧 국가주권의 제한과 직결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이 당연하였다.

1960년대에 강대국간의 거듭된 핵경쟁으로 인류의 미래가 핵전쟁의 위험에 둘러싸이게 되자 국제사회에는 비로소 핵에 대한 규제의 필연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전체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핵 확산을 억제하는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핵확산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여러 지역적, 국제적 다자협약이 체결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핵확산 금지와 관련하여 국제원자력기구 및 국제협약에 따른 국제법상 제재를 받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각 국가의 평화적 핵활동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감시와 검색을 하고 있으며, 핵확산 금지조약에 위배되는 핵활동을 하는 국가들에게 여러 가지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핵의 환경오염에 대한 국제적 규제

핵이 건강 및 환경에 미치는 위험과 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국제사회가 인식하게 된 것은 이보다 훨씬 더 나중의 일이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핵의 영향을 최소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가 건강 및 안전성 기준을 설정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핵의 환경적 위험을 간과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기준을 마련하지는 못하였다.

1979년 쓰리마일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물질이 누출되어 주변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은 후에야, 국제사회는 핵활동의 안전성에 대한 범세계적인 재평가 작업과 더불어 핵에너지의 안전한 이용에 대해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로 인해 주변지역 뿐만 아니라 북유럽 전역에 고농도의 핵오염이 확산되고 인체, 가축, 식품 등에 광범위한 피해가 미치게 되자 국제사회는 핵 안전성과 방사선 보호제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를 중심으로 안전성 기준의 강화, 핵사고 발생시 조기통보 및 원조를 포함한 긴급조치의 마련, 국제책임의 제도적 보장 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핵사고의 조기통보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Early Notification of a Nuclear Accident), 핵사고 또는 방사성 긴급상황시 원조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Assistance in the Case of a Nuclear Accident or Radiological Emergency) 등 일련의 핵관련 협약들이 체결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고는 핵의 환경적 위험에 대한 인류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핵의 환경오염에 대한 국제적 규제는 아직도 현실적으로 취약한 형편이며, 이같은 상황은 유류(油類)의 환경오염과 같은 다른 환경분야에 대한 규제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조선에 의한 유류의 해양오염에 대해 관련협약인 MARPOL 73/78 협약(*MARPOL Convention, 1973 & 1978)은 각 국가에 오염방지의무를 부과하고 강력한 이행제도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여러가지 제재를 가하는 방법으로 이행을 강제하고 있다. 더욱이 1982년 해양법협약(*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Montego Bay), 21 ILM(1982), 1261)은 상세한 규정을 통해 MARPOL 협약의 구속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핵의 환경오염에 대한 관련협약들은 각 국가의 자발적 준수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협약 불이행에 대해 강력한 제재규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설정한 건강 및 안전성 기준도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들을 강제할 수 없고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국제원자력기구가 핵무기 비확산원칙을 준수하고 보장하기 위해 갖는 역할과 권한이 확고하고 강화되어 있는 것과 크게 비교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핵무기와 평화적 핵에너지에 대한 국제법상 제재의 정도가 다르고 핵무기에 대한 구속력만이 강화되어 있는 모순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즉 국제법상 강력한 제재는 핵무기 개발 억제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평화적 핵에너지의 환경적 영향에 대해서는 극히 미약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지적할 것은 환경적 위험과 관련하여 규제하는 것은 평화적 핵에너지의 경우에 국한될 뿐이고, 핵무기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핵무기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평화적 핵에너지의 경우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그 폐해는 일본에 핵무기가 투하되었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평화적 핵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핵무기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나 핵무기를 배치했던 기지(예: 미국 Hanford Site의 군사기지)의 핵폐기물 처리 내지 토양오염, 지하수오염 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같은 문제들은 각 국가의 개별적인 규제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국제사회 전체에 이한 규제 노력은 전무한 형편이다.

핵 규제와 국가주권

평화적 핵에너지든 핵무기든 각 국가가 자국의 핵활동에 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내지 통제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그 국가의 가치 내지 이익 선택에 기초하고 있다. 특정 국가가 핵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개별적인 국가이익보다 지구의 존립유지와 환경보호라는 보편적인 국제사회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경우에 비로소 국제사회의 제재를 수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핵활동에 관한 제재가 곧 주권침해로 받아 들여지기 때문에 이를 수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핵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가벼운 주권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벼운 주권개념은 핵에 관한 국가 자신의 배타적 관할권 행사 의지와 상반되는 것으로서, 제한된 국가주권 내지 국가주권의 양보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 국가들에게 가벼운 주권개념은 그리 달갑지 않은 개념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핵활동과 관련한 국가주권의 제한을 거부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국가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되어 있다. 각 국가는 국가주권을 제한하는 대신 국제협력 강화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제협력의 강화만으로 핵위험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난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