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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원폭, 그 후
     산하온 (2014-09-16 오후 11:37:07)   Hit : 1628   Vote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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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일본 히로시마대학 평화연구소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한 후 히로시마평화공원(Hiroshima Peace Park)을 방문하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는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려는 일본군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일본이 원폭 피해를 입고도 항복하지 않자, 10일 후 나가사키에 또 하나의 원폭이 투하되었다.


당시 히로시마는 일본군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주요한 상공업 도시였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의 첫 번째 target이 되었다. 미 공군 전투기는 공중에서 T자형으로 보이는 상공회의소 건물과 인근 다리를 목표로 600m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던졌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일명 “리틀 보이(Little Boy)”는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히로시마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상공회의소 건물의 돔은 녹아내려 형태만 남았고, 벽돌과 돌덩어리까지도 녹아내렸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10만 여 명이 넘는 민간인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시신은 녹아 내려 흔적조차 찾기 어렵거나, 검게 그을려 알아보기 어렵게 변해 버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알이 빠지고 손·발이 녹아내리고 머리카락이 불에 타 버렸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도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였고 후손들에게까지 피해가 이어졌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원폭이 투하된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그때의 참상을 기록하고 보관한 기념관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과거 전시의 번영을 누리던 히로시마의 근대적인 모습과 원폭 투하 후 잿더미가 되어버린 히로시마의 모습의 사진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검게 불탄 시신의 사진과 시신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옷가지, 새까맣게 타버린 도시락과 자전거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원폭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려 숨진 소녀가 관속에 꽃과 함께 누워 있는 사진도 있었다. 처참하고 가혹한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기념관을 찾은 일본인들은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없이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전시관 밖에서는 커다란 무덤 앞에서 일본인 승려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육신이 녹아내려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시신들을 함께 매장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기념공원 한쪽에는 한국인 위령탑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 군수기지에서 일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와 있었고, 그 분들 중 2만여 명이 피해를 입고 돌아가셨다. 기념관을 찾은 한국인들은 위령탑 앞에서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였다. 69년 전 최초로 일본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흔적은 그렇게 그 자리에 남겨져 후세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원폭의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시는 국제평화의 도시, 국제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자기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나간다는 것이다. 일본 국제법학회 회장인 사카모토 교수는 부모님이 모두 원폭 피해로 돌아가신 원폭 피해자 가족이다. 그는 학술회의에서, 원폭 투하가 분명 국제법 위반이지만 일본은 이를 항의하는 대신 핵무기 폐기운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공유화된 평화의 가치관을 이끌어나간다고 주장하였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가해자가 이를 망각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과거의 일을 망각하도록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극복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일본인들은 원폭을 상기하지만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고, 다시는 그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이런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한국 여성이 입은 피해에 대해 일본을 원망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전쟁 중 여성을 보호하는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폭으로 부모님을 잃은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갖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와 똑같은 논리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해자로서 가해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피해자에게 과거의 사실을 망각하도록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커다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원폭이 왜 일본에 투하되었는지, 원폭이 투하되던 순간에도 일본군이 한국에서, 중국에서, 만주에서, 또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살육을 하고 여성들을 겁탈하고 재산을 약탈해 갔는지 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한 피해국이 아니라 전쟁 가해국으로서 수많은 국가와 그들의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죄를 잊지 않는 것은 원폭 투하 사실에 대해 피해자로서 평화를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다시는 인류가 핵무기로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의 핵무기에 비해 현대 핵무기는 그 몇 배나 더한 치명적인 살상력을 지니고 있다. 인류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또 다시 겪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무거운 것은 단지 원폭의 참혹한 피해 뿐만은 아니었다. 일본인들과의 사이에 도저히 좁힐 수 없는 gap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이 과거 입은 크나큰 상처를 위로하고 싶다. 다만 자신들이 입은 상처만 아파하지 말고, 자신들이 다른 국가에 그리고 다른 민족에게 준 상처를 먼저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진정한 사과와 따뜻한 위로의 말이다. 그 옛날 힘없는 식민지의 국민으로 국가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일제에게 끌려간 그 분들이 이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되찾기를 원한다. 일본은 역사적인 잘못을 피해자라는 가면으로 덮는 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잘못된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 드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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