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환경협약
1985년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협약
협상 과정과 각국의 입장
1985년 비엔나 협약은 오존층 파괴의 영향으로부터 지구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보편적인 국제협약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이 협약의 채택을 위해 1981년부터 협상을 시작해 왔다. 다른 협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협약의 협상에서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국가그룹들 사이의 견해가 크게 대립되어, 이들 사이의 견해를 조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은 1973년 당시 전세계 염화불화탄소 총 생산량의 40%를 차지하였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제일의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서 오존층 파괴에 큰 역할을 하여 왔다. 그러나 1978년부터 방취제, 헤어 스프레이와 같은 분무식 생산품에 염화불화탄소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1981년에 대기 정화법(Clean Air Act)을 개정하여 염화불화탄소의 금지를 규정하는 등 일찍부터 국내입법을 통해 이 화학물질의 규제에 앞장서 왔다. 따라서 미국은 당연히 국제적인 통제제도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미국 외에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포함한 토론토 그룹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염화불화탄소의 방출을 규제하고, 생산량을 감축시키는 방안을 지지했다.
유럽공동체는 염화불화탄소의 최대 생산국 그룹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들이 표면상으로 내세운 이유는 염화불화탄소를 비롯한 화학물질이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조치가 자국의 수출산업위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같이 국가그룹들 사이의 이해가 서로 다를 지라도, 오존층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부국가가 아닌 전체국가들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일부 국가에서 방출시키는 염화불화탄소 기타 화학물질이 그 국가의 성층권 오존층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규제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이 규제제도에 동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이해그룹들의 견해차이를 조정하여 1985년에 비엔나 협약이 채택되었으며, 이 협약이 채택되기까지 미국이 많은 역할을 했다.
협약 내용
비엔나 협약은 오존층을 변하게 하는 모든 인간활동에서 발생하는 악영향으로부터 인류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당사국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사국에게 부과된 '적절한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 협약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적절한 입법 및 행정적 조치가 이에 포함되며, 오존층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간활동을 통제하는 정책을 조화시키고, 협약이행을 위해 합의된 조치, 절차 및 기준을 공식화함에 있어 당사자들이 상호협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약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적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 상세히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부속서에서 오존층 파괴물질로 추정되는 물질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비엔나 협약은 인간활동이 오존층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환경적 결과를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 체계적 관찰, 연구와 정보교환을 하도록 당사국에게 국제협력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오존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리적, 화학적 과정, 오존층변화에서 비롯되는 인류건강과 기타 생물학적 영향, 기후변화, 오존층 파괴물질, 대체물질과 기술 등에 대한 연구와 평가에 착수, 협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오존층보호를 위해 당사국이 법률, 과학, 기술분야에서 정보를 상호교환하도록 고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교환은 각 국가의 법률, 규칙, 그리고 관행에 따라 이루어 지도록 되어 있으며, 동시에 비밀로 간주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장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규정에 비추어 볼 때 비엔나 협약은 당사국들에게 실질적인 기술이전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즉 당사국들에게 단지 기술이전에 협력할 것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의무적으로 이행할 것을 규정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국내상황에 따라 기술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협약의 규정만으로는 개발 도상국들이 대체물질개발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기에 충분치 않으며, 이로 인하여 개도국들이 거세게 반발하여 서명을 거부하였다. 결국 비엔나 협약은 당사국에게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공허한 협약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기관
비엔나 협약은 주요기관으로 당사자회의(conference of parties)와 사무국을 설치하고 있다. 당사자회의는 협약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결정기관으로서 필요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당사국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아 협약이행을 검토한다. 새로운 의정서와 부속서를 채택하고 협약을 개정하는 것도 당사자회의의 책임으로 되어 있다.
분쟁 해결 절차
비엔나 협약은 협약 또는 의정서의 해석 및 적용과 관련하여 당사국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해결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한 경우 당사국들은 평화적 분쟁해결방법으로서 교섭, 제3자에 의한 화해 및 중재를 선택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이 합의하지 않는 경우에 중재재판이나 국제사법법원 또는 조정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 이 협약에서 강제적인 분쟁해결절차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평가
비엔나 협약은 이해국가그룹간의 갈등으로 오존층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보다 상세한 통제조치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고, 선진국의 입장에 치중한 정보교환규정 등 형식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어 그 본래의 의의를 크게 상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이 협약을 통해 국제공동체가 환경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신하게 된 점은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오존층 파괴가 인류 건강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협약범위 내에 포함시킴으로서 자연환경과 인간의 상호의존관계를 인식하는 이른바 생태적 접근방법에 기초하며, 실제적인 피해에 앞서 잠재적인 피해가능성만으로 사전예방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예방적 접근방법을 취한다는 점에서 환경법 분야에서 주요한 선례가 되고 있다.